뉴스하다는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을 맞아 ‘잊혀진 인천: 백범 150주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나?’ 연재를 특별기획으로 마련했다.

유네스코가 2026년을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선정했다. 세계가 그의 삶을 되새기는 해에, 정작 그가 청년 김창수에서 김구로 거듭난 인천은 조용하다.
백범은 인천과 각별한 인연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인천감리서에서 두 차례 옥고를 치렀고, 쇠사슬에 묶인 채 인천항 축항 공사장에서 노역했다.
그를 살리기 위해 옥바라지에 나섰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발걸음 또한 인천 곳곳에 남아 있다.
백범 스스로 인천을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 표현했을 만큼, 인천은 그에게 고난의 땅이자 동시에 자신을 만든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인연을 기리려던 인천의 시도들은 정작 실제 사적지와 동떨어진 채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거나,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
1997년 시민 모금으로 세워진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의 김구 선생·곽낙원 여사 동상은 감리서 터, 그리고 인천항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는 채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동상을 실제 사적지 인근으로 옮기자는 논의는 벌써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을 뿐, 실현되지 않고 있다.
제물포구 신포동에 조성된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역시 고증과 장소성을 둘러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한때 인천시가 추진해 온 제물포르네상스·내항 재개발 구상에도 ‘김구광장’ 조성이 거론된 적이 있지만, 구체적인 실현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채 자취를 감췄다.
동상을 실제 연고지로 옮기자는 제안은 2012년 문병호(당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 2018년 박남춘 인천시장의 시의회 시정질의와 답변, 2020년대 중구(현 제물포구)의 ‘백범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도 거듭 등장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논의는 매듭 없이 흐지부지됐다. 왜 인천시·제물포구·해양수산부는 십수 년째 반복된 문제를 매듭 짓지 못했는가. 이 물음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출발한다.
뉴스하다는 탄생 150주년이라는 상징적 계기를 통해 인천 곳곳에 흩어진 ‘김구의 흔적’들을 하나의 축으로 엮고자 한다.
1949년 백범 서거 직후 지역 유지들이 동상 건립을 추진했던 기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천에서 논의돼 온 기념사업을 전수 조사한다.
상징물이 세워지고, 방치되고 다시 논의되기를 반복해 온 과정을 추적한다. 또 이면의 정책 결정 과정과 책임 소재를 규명한다.

그동안 광복절을 전후한 단편적 기념 보도나 기념물 위치 논쟁을 다룬 기사는 있었지만, 인천에서 논의된 김구 기념사업 전체를 전수 조사하고 흩어진 상징물들을 하나로 엮어 그 발자취를 추적한 시도는 없었다.
뉴스하다는 현장 답사와 조성 당시 회의록·시의회 자료, 관련 부서 공문, 제물포르네상스 마스터플랜 등을 찾아보고 역사학자와 향토사학자, 인천시·제물포구·인천항만공사 등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을 예정이다.
탄생 150주년, 세계가 백범을 기억하는 올해에 정작 그를 만든 도시 인천은 왜 침묵하는가. 그 답을 찾는 여정을 이제 시작한다.
[이 기사는 2026 KINN(한국독립언론네트워크) 탐사보도 기획안 공모전 선정작으로 뉴스타파함께재단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홍봄 기자 spring@newshada.org
이창호 기자 ych23@newshad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