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의 벤젠] ①함정 페인트칠하던 해경, 혈액암 ‘공무상 재해’ 첫 인정

해양경찰관 박모(54)씨는 2018년 함정 도색작업을 맡은 뒤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특수 건강진단도 작업환경 측정도 없어 벤젠 노출을 입증할 길이 없었다.

특히 인사혁신처는 이를 ‘불순물’ 정도로 보고 공무상 재해를 불승인했다.

박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약 8년 만인 2026년 1월 서울고법이 해경 최초 혈액암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그러나 혈액암에 걸린 해경은 박 씨 말고 더 있다. 여전히 도색은 성분 확인 없이 이뤄지고 있다.

박 씨 홀로 증명해야 했던 시간과 바뀌지 않는 구조를 비영리 독립언론인 ‘남부저널’이 취재했고, 뉴스하다는 의미 있는 기사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3편에 걸쳐 싣는다.

혈액암 공무상 재해 첫 인정 끌어낸 해경

2026년 8월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박 씨는 서둘러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서울 소재 강남을지대병원으로 향했다. 늦어도 오전 9시 전후로 채혈을 마쳐야 제주도로 돌아가는 항공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9시가 조금 넘어 병원 3층에 도착한 박 씨는 접수를 마치고 바로 채혈실로 향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조금 빠져 보였다.

2026년 8월 27일 강남을지대병원에서 채혈을 하고 있는 박 씨. 사진=박소희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제주시 아라동 카페에서 박 씨를 처음 만났다. 제주도에 문을 열었던 2020년엔 오픈런 현상까지 빚은 카페다.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다가온 박 씨의 팔과 어깨는 오래 움직여 온 티가 났다. 코가 둥글고 단단한 얼굴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우면서도 푸근한 인상을 동시에 풍겼다.

“당신이 우리 센터 청원 경찰로 서 있으면 민원인이 줄어들 것 같은데, 은퇴하면 지원해보는 게 어때” 아내는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1972년 강원 양양에서 태어나 2006년 6월 30일 해양경찰 순경으로 임용된 박 씨는 2018년 9월 6일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 진단을 받았다. 2017년 10월 1일 경사로 근속승진한 지 약 1년 만의 일이었다.

백혈병은 발생 세포에 따라 골수성 백혈병과 림프구성으로 나뉜다. 이는 병의 진행 속도에 따라 다시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되는데, 박 씨는 일상 생활이 가능한 만성 진단을 받았다. 다만 밤 10시마다 평생 항암제를 복용해야 한다. 채혈을 마친 그는 “병원에 올 때마다 심판대에 서는 기분”이라고 했다.

3개월마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려면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지난 1월 공무상 재해가 인정돼 치료비와 경비 부담을 덜었다. 주변에서 “안 될 거라던”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다.

서울고등법원 제4-2행정부(재판장 이광만)는 지난 1월 28일 박 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직업성 암으로 인정했다. 이는 인사혁신처가 상고를 포기해 2월 13일 최종 확정됐다. 해양경찰 가운데 혈액암으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첫 사례다.

2026년 1월 28일 서울고법 판결문

함정에서 무슨 일이

해양경찰관은 함정과 육상 파출소를 오가는 순환근무를 한다. 올해로 20년 차인 그는 크고 작은 함정 4척을 거치며 해상에서만 총 7년 5개월을 일했다.

운 좋으면 은하수도 볼 수 있는 함정 근무는 낭만도 있지만, 다들 꺼릴 만큼 업무 강도가 센 편이다. 2014년 세월호 이후 잠시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조직이 축소되기도 했지만, 현장 업무는 똑같았다. 외국인 불법 어선을 단속하고, 조난 어선을 예인하고,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밤엔 주로 레이더 감시 업무를 맡았고, 정박 중엔 배의 낡은 부위를 긁어내고 페인트를 칠했다. 선체에 눌어붙은 녹과 낡은 도막, 따개비를 그대로 두면 함정의 강도가 떨어지고 속도·연비도 나빠지기 때문이다.

“수영도 못했던 제가 해경에 들어와서 누군가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된 거예요. 저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곳이죠.”

해경 함정의 크기는 5000톤급 대형함부터 소형정까지 제각각이다. 박 씨가 처음 통증을 느낀 2018년 8월 16일부터 24일은 3000톤급 함정을 타고 바다에 나가 있었다. 소형정의 좁은 잠자리에 비하면 ‘호텔’ 같았지만, 7박 8일간 밤낮없이 바다를 지키는 일은 육상보다 20~40% 이상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해양경찰관들은 불법 어선 단속과 인명 구조 등 본연의 임무 외에도 함정의 성능 유지를 위해 청락 및 도색 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었다. 사진=해경 SNS 

당시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이 제주로 올라오고 있었다. 조업 중이던 어선 52척을 안전한 해역으로 옮겨야 했다. 가슴이 눌린 것처럼 답답했지만 당장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해상 당직은 일몰후부터 일출전까지 당직을 서야 하는 매우 피로한 업무입니다. 배안의 생활은 평소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 건강관리를 위해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어도 제때 의사의 진료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 동료 ㄱ씨의 서면 진술서 中-

피 검사

가슴이 묵직한 느낌이 계속됐다. 2018년 9월 4일 당직을 마치고, 집 근처 내과에 들렀다. 심전도와 초음파를 검사 했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나가려다 무심코 물었다.

“혹시 여기서도 피 검사를 하나요?”

피검사 두 달 전 (2018년 6월) 건강검진에서 혈색소(헤모글로빈)가 정상 수치보다 낮은 결과가 나왔다. 내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지만 지나쳤다. 평소보다 피로했지만 커피로 버텼다. 지난 봄 부산 해양경찰정비창(부산정비창)에서 방전된 체력이 아직 덜 회복된 것뿐이라고 여겼다.

“한 번만 더 뽑아봅시다. 조금 이상해서.”

다시 검사해도 백혈구 수치가 정상의 서른 배였다. 의사는 “백혈병 같아 보이니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같은 날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니길 바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은 나왔지만, 만성인지 급성인지는 그곳에서 가늠할 수 없었다. 제주도 내 최대 규모 병원이지만 그 이상의 정밀검사가 안 되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운명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날 확인한 건 제주도가 바다에 가로막힌 섬이라는 사실이었다. 피가 마르고 속이 탔다. 아내는 전국에서 병으로 가장 이름 난 곳이 어디인지 밤새 검색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 갈림길에서의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졌습니다. 무서웠죠. 울고 또 울었던 것 같아요.”

1972년 강원 양양에서 태어나 2006년 6월 30일 해양경찰 순경으로 임용된 박 씨는 2018년 9월 6일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 진단을 받았다. 이미지= Canva로 제작 

온 나라가 대북 특별사절단의 평양 방문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2018년 9월 5일, 초등학생이던 딸을 친척 집에 맡기고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으로 갔다. 병실이 없어 앰뷸런스를 타고 여의도성모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강도처럼 들이닥친 재난에 아내와 박 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다음날, 다행히 만성이라고 했다. 의사는 3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CML은 표적항암제가 개발된 상태라 매일 약만 잘 먹으면 일상 생활이 가능했다. 다만 관리를 잘못하면 언제든 급성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 봄 부산정비창에서 작업할 때 뒷목이 뻐근하면서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아 그때구나. 그런 확신이 들더라고요.”

2018년 봄

그해 3월 말, 박 씨가 소속된 3000톤급 대형함이 부산정비창에 도착했다. 하지만 1994년 준공된 이 정비창은 노후화로 도크 수용 용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수용 한계를 넘는 함정 중 상당수는 해군정비창에 위탁 수리를 맡길 정도였다.

수면 정박 상태에서 선체를 정비하는 일은 이른바 ‘극한작업’으로 불렸다. 박 씨는 전장 100미터가 넘는 배를 올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정비 40일 강행군’이 시작될 참이었다.

“2018년 3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의 부산해양경찰 정비창 수리기간 동안 (…) 휴무 휴일 휴가를 제외하고는 매일 페인트 도색 및 청락작업을 하였으며 특히, 일과전에 도색작업을 시작한 적도 많았으며 점심도 거르면서 쉬지 않고 한 적도 다수 있고”

– 동료 ㄴ씨의 서면 진술서 中-

일은 선체를 칠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일부 함정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계선주 (볼라드)까지 녹을 벗기고 새로 칠했다.

도색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녹과 굳은 페인트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라인더로 선체를 긁을 때마다 쇳가루가 사방으로 튀었고, 체력 소모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갑판과 상부 구조물은 발 디딜 곳이라도 있었다. 문제는 선체 외벽이었다. 작업을 위해 배 옆에 붙인 뗏목은 출입항하는 어선에 밀려 수시로 흔들렸다.

부산해경정비창에서 수중정박한 함정의 청락 작업을 하고 있는 해경 . 사진=박 씨측 제공

외벽의 불순물을 모두 긁어내면 페인트를 칠한다. 물에 잠긴 부분은 애초에 손댈 수 없다. 해수면 바로 위에 페인트 경계선을 만들기 위해 선체 하단에 테이프를 붙이고 방호 도료를 뿌렸다. 도크가 있었다면 안 해도 될 작업이다. 뗏목을 조금씩 밀어 옮겨 가며 뱃전을 한 바퀴 다 돌아야 하는데, 종합 훈련 대비 때문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이었다.

40일 정도의 짧은 수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선체 상부 부분은 압축공기에 의한 페인트 분사기(에어 스프레이)를 사용했다. 방아쇠를 당기면 노즐에서 나온 페인트 입자가 바람에 날렸다.

“도색 작업 중간 휴식시간에 박 경사가 기대어 누워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콧속 콧털이 하얀 페인트 색으로 변해 있어서 ‘너무 무리해서 작업을 하지 않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호흡기 건강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직 근무의 특성상 교대 근무의 불규칙함 자체가 주는 피로함이 더해서 근무 교대시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얼굴빛은 좋지 않아 제가 봐도 건강검진을 자세히 받아보시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 동료 ㄷ씨의 서면 진술서 中-

도색을 할 땐 발림성을 위해 페인트에 신나를 섞는다. 롤러나 붓으로 칠할 땐 10~20% 섞지만 스프레이는 30% 이상을 섞어야 분사력이 좋아진다. 신나는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다. 종종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동료도 있었다.

페인트 작업시에는 페인트 희석제의 휘발성 냄새로 환각상태가 되며 작업 중간중간 쉬어가면서(…)특히 박 경사는 수리 막바지에는 에어 스프레이건으로 전담 페인트 도색작업을 하였으며, 에어 스프레이건 페인트 도색작업시 평상시보다 페인트 화학제를 많이 사용하여야 하므로 건강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 동료 ㄹ씨의 서면 진술서 中-

2018년 4월 16일, 박 씨 소속 지역관할 해양경찰서는 상반기 해상종합훈련을 시작했다. 사진=해경 

함정 정비가 시작되고 약 3주 뒤인 2018년 4월 16일, 해당서의 상반기 해상종합훈련이 시작됐다. 배에 있던 인원 하나둘 훈련에 투입됐다. 정비 마감 열흘 남겨 놓고 세 명이 작업을 했다. 함정 훈련에 맞춰 정비를 마쳐야 했기에 막바지 작업은 밥도 거를 정도로 강행군이었다.

이 시기 에어 스프레이 사용은 박 씨가 전담했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하자고 제안했지만 기한 내 작업을 마치려면 손에 익은 본인이 하는 게 빨랐다. 롤러나 붓은 처음 만져보는 사람도 곧잘 할 수 있었지만, 스프레이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 7시 30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점심은 의경이 가져다 주는 커피로 때우는 날도 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정비 마감 사나흘 앞둔 날, 갑자기 뒷목이 뻐근해졌다. 온몸에 힘이 쫙 풀리더니 몸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좀 더웠어요. 의경이랑 둘이서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처음 느껴보는 쇠약감이랄까. 그땐 좀 심한 몸살 정도로만 생각을 했는데 제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죠.”

생각을 바꾸면 전혀 다른 세상

치료를 시작하고 약에 적응하는 처음 2주는 매우 힘들었다. 그중 사흘은 구타를 당하는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방안에서 하루종일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골수 검사는 아프지 않았는데 그 사흘은 참을 수 없이 아파서 소리를 질러대는데, 아내와 딸이 모른척 해줬어요. 그게 지금도 많이 고마워요”

딸은 평소처럼 등교를 했고, 아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박 씨를 대했다. TV, 냉장고, 세탁기, 소파, 식탁, 침대, 벽시계 모두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병마라는 강도의 목적은 오직 그의 목숨뿐인 것 같았다. 의사는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유서를 썼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을 적었던 것 같아요. 수십장은 됐을 거예요. 만성이면 살 수 있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희망을 주려고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질병 휴직을 내고 집에 있으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우울증이 심하게 왔는데, 그때 정말 매일 법륜스님 말씀을 들었어요. 급성일 수도 있었는데 만성인 거잖아요. 운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의 관점을 바꾸니까 하루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았죠.”

인사혁신처는 직업성 암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도장 업무로 인해 병이 났다는 확신을 지울 수 없었다. 담당 의사에게 소견서를 받아 2018년 11월 15일, 공무상요양을 신청했다. 직업성 암으로 인정되면 급성이 돼도 가족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가장 컸다.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한 박 씨는 2019년 9월 1일 복직했다. 부정적 생각에 잠식 당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다만 야간 근무가 어려워 함정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파출소에서 6개월을 근무하고 경찰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현장에서만 일했던 그에게 책상 업무는 쉽지 않았다.

2020년 2월 7일, 인사혁신처로부터 통보서가 도착했다. 약 1년 3개월 만이었다.

박 씨가 인사혁신처에게 받은 통보서. 사진=박 씨측 제공

인사혁신처는 박 씨가 공무상 요양 신청을 내고 1년 3개월 만인 2020년 2월 7일 업무와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했다. 

그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함정에서 사용하는 페인트와 신나에 벤젠이 함유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양이 불순물 정도고, 도색작업 자체도 간헐적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은 주로 외부 용역에 맡기지만 2018년 박 씨의 백혈병이 발병할 당시까지만 해도 함정 근무자들은 누구나 청락 및 도색 작업을 했다. 박 씨 소속이던 안전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정비 기간에는 모두 그 일을 나눠 했다. 그러나 언제 얼만큼 그들에게 유해물질이 노출됐는지 알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벤젠 등 유해인자를 취급하는 노동자는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해경 보건관리 규칙 역시 함정 근무자에 대해 매년 1회 특수건강진단을 의무화하고 있다.

박 씨는 유해인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받은 적이 없었다. 민간 사업장이라면 의무인 작업환경측정도 없었다. 남부저널의 취재를 종합하면 신나 페인트 제품 자체의 벤젠 함유량을 함정 입고 전 사전 검사하는 절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사혁신처는 애초에 입증이 불가능했던 노출량을 ‘불순물 정도’로 단정했다. 남부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벤젠과 같은 유해물질에 직업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공무원은 사실상 소방밖에 없다’는 취지의 관계자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씨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재심 성격의 심사를 청구했다.

2021년 4월 19일,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 역시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 앞선 판단과 사실상 복붙 수준의 이유였지만, 그 결론을 내는 데 11개월을 끌었다. 공상은 재심사청구가 있는 산재와 달리 불복 심급이 하나뿐이다. 그에게 남은 건 행정소송뿐이었다.

“해경 동료들과 의사들, 그리고 변호사님 덕분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1심 패소하고 접으려고 했거든요. 변호사한테 사기당하는 거다. 그렇게 말한 분도 있었죠.”

그의 소송대리인 이학준 변호사는 왜 항소심을 설득했을까.

※ 이 기사는 비영리 독립언론 ‘남부저널’에 먼저 실렸습니다.

박소희 남부저널 기자 ya9ball@nambujourn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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